녹야회 ver.02 (http://www.noky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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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회명 록야원(鹿野苑)의 탄생

대구계명대학 영문학과 학생들과 한국 사회사업대학 (현 대구대학)사회 복지과 학생들로 구성된 서클 명칭. (대구 대명동에 있는농아학교 학생들을 지도,교육하는 학생단체)

1977년 11월 27일 임충석(빌리버), 황정일(도마),  박용득(프란치스꼬), 전인재(프란치스꼬) 씨가 모였다. 신앙인으로써 친목 및 봉사 활동과 개인 신앙 쇄신을 주제로 하는 우리 기공계 모임을 몇 사람 안되는 천주교인으로써 앞으로의 우리의 친목과 봉사활동을 전개하며 회명은 녹야원으로 정하고, 이상 · 봉사 · 사랑의 기치를 들고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봉사하기로 하고, 회명을 록야원으로 정하고, 회원모집, 1인회비:2,000원. 회장에 황정일, 총무에 임충석을 선임하였다.

    + 록야원(鹿野苑) 모임의 취지
사회는 극도로 발달하여 물질 만능시대가 도래하여 날로 우리들의 정신 생활이 극히 병들어 감을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소위 신앙인으로써의 생활을 뒤돌아 봄에 우리자신들의 나태된 현 생활에 부끄러움을 느껴 여기 그리스도 이름으로 록야원의 형제모임을 갖고 서로가 형제 애 를 발하여 조금이나마 그리스도의 뜻과 일치하는 길과,메말라 가는 우리들에 인간 본연의 참 삶을 배우고 서로 도우며 신앙인의 자세를 확고히 하고 작은 우리 정성을 모아 나보다 못한 불우한 형제,자매들을 돌보고 나의 가정생활과사회생활에 모범이 되며 웃음이 없는 사회에 인정의 웃음과 메마른 사회에 달콤한 단비를 줄 수 있는 노력으로 서로의 힘 합하여 이모임 을 갖는다.무엇보다도 이모임에 회원형제는 각자의 책임을 느끼고 제반활동에 적극 협조하여 이 모임이 그리스도 뜻에 합당하여 오래토록 계속되기를 서로가 기원합시다.
1977년12월18일 록야원 일동
1978년 회명을 록야원에서 鹿野會로 개칭함
    + 발자취 1
1979년 5월 첫주 회장단이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3리 포천 농축 단지를 방문하여 진료지를 정했고 5월13일 에 중고 유니트를 용달차에 싣고 농축단지 어느 주민집 구석진 방에 시설하여 진료실을 마련하고, 1979년5월27일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 신평3리 포천 농축 단지(음성 나환자 정착촌)로 1차진료를 함.

처음 대하는 나환자의 진료에 무척 어려웠으나 의사님과 간호원님들의 진실된 봉사 정신으로 두려움 없이 무사히 끝냈습니다. 농축단지 주민의 소풍의 날, 포천 본당 신부 황신부(호주인)야외미사 마치고 주민들과 함께 점심식사
<1979.5.27 포천농축단지 (음성 나환자촌)> <1979.5.27 포천농축단지 강대건고문님의 첫진료>

- 시설미비
- 진료지가 너무 멀다
- 환경이 너무 좋지 않음
- 기창덕(돈보스꼬)박사님 고문 추대
- 강대건(노렌죠)원장님고문 추대
- 박도세 지도신부 추대
    + 발자취 2
1979년 11월 포천 농축 단지 자체 운영회로부터 진료를 중단해 달라는 통보가 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신축건물을 세우겠다는 것이었으나, 속 내면은 시국과 관련이 있는 듯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고, 어느날 포천 경찰서 정보과에서도 방문이 있었다.(기창덕 고문과 대담)

그리고 기독교측과의 갈등도 있는 듯하나 그 역시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교통, 거리가 너무 멀고 전회원이 대중 교통을 이용하므로써 불편이 너무 크다는 표면적인 이유와, 그에 이은 장비부족과 시설미비로 앞으로 보안이 되는 대로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잠정 중단하였다.
    + 발자취 3
1979년 12월 부터 안양 나자로 마을로 진료지를 임시 옮겨 진료를 시작하였다.
<나자로마을 첫진료>
지금까지의 녹야회는 10여명의 치과기공사와 두분(고문)의 치과의사로써 운영되어 왔으나 진료지 관계로 두분의 고문은 안양 나자로 마을을 택함으로써 녹야회 첫 모임의 정신에 맞지 않다 하여 그동안의 작은 마찰음은 소리를 내게 되었다.

전회원이 두 고문을 방문하고 계속 지도를 원했으나 결과는 부정적이었다.그동안 합류을 반대해온 두 고문님과 윤인택 회원은 나자로 마을 진료를 하기로 하였다.나자로 마을 진료는1981년7월로 기창덕,강대건 두 고문님과 윤인택회원 의 목으로 남기고 ......
<1980.12.녹야회정기총회-나자로마을 이경재신부님과>

1982년, 다시 포천으로 진료지를 옮기고 그때에 현 국군 일동병원에 군의관으로 복무 중이던 김일규회원님(당시 대위) 을 박용득 회장님께서 섭외 매주일마다 진료를 해주셨고. 그러면서 한장술(율리오),이종옥(루가),최정식,윤주홍(루가), 제 치과의사분들을 영입함으로써 후기 녹야회로 탄생 하게 되었다.모든 회원의 협조와 지도신부님께서 꾸준히 노력하여 더 큰 녹야회를 만들자 하시고, 순조롭게 1983.4.24까지 진료를 했습니다.

그 해 1982.11.8 신부님(최선웅,아고버)을 모신 가운데 통합 총회를 개최하고 가톨릭 사회 복지회 소속이었던 최선웅 신부님을 지도 신부로,초대회장에 한장술(율리오), 회장의 추천으로 부회장에 박용득 (방지거) 총무역시 추천으로 전인재(방지거), 수석감사에 이종옥(루까), 차석감사에 황정일(도마)씨등 임원진은 지도 신부님이 인준을 함으로써 새 집행부가 탄생되었다.
<김일규대위 진료모습>
    + 발기총회 취지문
"어리고 여린 마음으로 모두들손을 모으고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신앙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면서 받는 은혜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이제 그 뜻을 모아 조그마한 일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각자 가진 능력으로 사회의 구석지고 어두운 곳을 찾아 빛과 소금이 되라는 성서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오늘 신부님을 모시고 의사,간호사,기공사 그 외 뜻을 같이하는 형제 자매님 들과 함께 이 감격스러운 발기 총회를 자축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많은 어려움과 난관이 가로놓여도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고 무모하리만치 힘차게 정진 하기를 기원하다. 그곳은 이제 녹야회의 손길을 기다리는 곳에 언제나 머무를 것입니다. 그곳은 사회에서 외면당하고 스스로 능력이 없는 불우한 사람, 자식이 없는 불행한 노인, 병자, 어린이, 그 외 남녀노소를 구별하지 않고 함께 그 고통을 나누고자 합니다.

항상 기도하며 성실한 자세로 주님께 구하고 의지할 것입니다. 이제 녹야회는 한 단체로써 면모를 갖추고 月 한번씩 정기회와 필요시 임시회를 열어 앞으로 일을 논의할 것입니다. 오늘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회원들에게 축하와 사랑을 보내며 발기의 취지를 밝히고자 합니다."
1982.11.8

"모두가 감격 적이었다.주님께서는 남을 위해 일하겠다는 사람에게는 일거리와 여건을 마련해주시고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마음깊이 느끼며 모든 일은 주님의 뜻대로 되어갈 것이다"
    + 발자취 4
1984.5.15일~1985.6.10일 : 부천 성가 양로원
1984.9.2~1985.4.7일 까지 안양 사랑의 선교회 양로원 두곳 합동진료

1985.6.2일 상계동 소재 맹인 재활촌 에 진료 시설 설치 1985.6.9 오전11시30분 프란치스코 수도회 최병철 아오스딩 신부님 미사봉헌후진료시작함. 1986.3.2까지

1986.9.28일 정릉 안나 의집 양로원(성가 수녀회 운영)진료시작.1987.4.26까지.
    + 발자취 5
1987.5.17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 진료 시작했습니다. 그 후 91년도에 현재의 박타베오 수녀님(치과의사)께서 가족이 되시어 우리는 서울의 요셉의원으로 진료지를 옮기게 되었고, 현재 음성 꽃동네는 박타베오 의사수녀님께서 2,000여 가족의 구강건강을 돌보고 계십니다.
<음성꽃동네 마지막진료 후 가족들과함께> <음성꽃동네 송별 점심 >
1991.7.14일까지
    + 발자취 6

1991.8.25일 관악구 신림동 소재 요셉 의원으로 진료지 이전.1992.7.19까지

1992.9.20일 가평 꽃동네로 새 진료지 이전 현재 진료 중

1999. 12. 그동안의 기록을 간추린 녹야회 회지 발간

주님! 저희가 봉사의 참뜻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남을 돕는다는 것이 교만의 마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진정 어려운 이를 도울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을 갖게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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